* 공백 포함 5,652자
* 카모카테 타낫세/레하트 애정B엔딩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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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카라샤•이노=리카라고 하는, 디톤 인근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나, 스물 세 해 한 평생을 이 근방에서만 살아온 페넷 저택의 평범한 시종이랍니다. 아이참, 참으로 오랜만이지요? 그간 페넷 저택은 다망하여 소식을 전할 짬을 잠시도 낼 수가 없었답니다. 그간 저택에는 새로운 사용인도 많이 늘어 저는 후배도 여럿 두게 되었고, 쓰지 않던 방에 새로이 입주를 위한 공사를 하고, 하여간 적잖은 일들로 더욱 바빠진 참이지요. 이 저택의 주인님 덕분에 영지는 날마다 풍요로워지고, 그 외에도 경사가 많았지만, 그 중 가장이라고 할 만한 것은 바로 페넷 가家의 후계분이 태어나신 일입니다!
제 주인님이신 레하트 님에 대해서는 이미 입이 아플 만큼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 그대로 넘어가겠습니다. 레하트 님께서는 몇 해 전 도련님을 무사히 출산하셨고, 임신 과정 중에—주로 레하트 님의 반려이신 타낫세 님이 겪으신 임신 도중의 연결과 입덧, 그에서 비롯된—몇몇 조그마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마는, 그 정도는 작은 주인님의 탄신에 비하면 아주 작디작은 일이지요. 페넷 저택의 작은 주인님은 레하트 님의 이름 글자 일부와, 타낫세 님의 이름 첫 글자를 딴 '테레하'라는 이름을 지니고 건강히 첫울음을 터뜨리셨답니다.
정말이지 경사였답니다! 작은 주인님은 두 분처럼 새파란 눈동자에, 레하트 님처럼 새까만 머리칼을 지니셨는데, 그 외모가 참하고 타낫세 님을 면면히 빼닮아 시종들 모두가 참으로 귀여워하고 있지요. 아직 탄생하시기도 전, 아기방을 단장하는 날에만 해도 저택의 모두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몰라요. 그뿐만이겠어요? 각지에서 귀한 가구며 먹거리며 하는 것이 올라오고, 6대 왕위에 오르신 바일 폐하께서 피아칸트에서부터 직접 내려오신 일도 있었지요. 저택은 아주 축제 분위기였답니다.
작은 주인님이 첫울음을 내셨던 그때부터 6년이란 시간이 흘러, 작은 주인님—테레하 님은 걸음마도 떼시고, 말도 트이셔서 날이 가면 갈 수록 영특한 모습을 보이고 계신답니다. 이 역시 저택 모두의 자랑거리 중 하나예요. 물론, 테레하 님이 그 작은 입으로 오물대며 제게 말을 붙이시는 그 순간의 기쁨에는 비할 바 못 되지요.
본디 귀족에게는 저택에 입주하여 함께 지내는 시동侍童을 붙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라 들었지만, 아직 어린 테레하 님께는 간혹 시장이나 저택 아래에 내려가실 때 만나는 민가의 어린아이 몇과 저, 그리고 영주님 내외 뿐입니다. 인근 영지의 귀족들 중 테레하 님과 비슷한 연배인 아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사람을 저택에 들이는 일에 매우 엄격하시어 그렇게 되었지요. 저택 내부의 사용인들에게도 이미 그러하신데 테레하 님과 관련한 사람이라니 어떻겠어요? 그래서 이전에 레하트 님께서 저를 따로 불러내어 테레하 님의 담당 시종이 되어달라 말씀하셨을 때, 저는 몹시 기뻤답니다. 저를 무척이나 잘 보아주시고 믿고 계신다는 뜻이니까요.
여하간, 저는 오늘도 테레하 님을 모시고 저택의 정원에 나가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테레하 님은 성격적으로도 영주님 내외를 쏙 빼닮아, 어린 나이이신데도 책을 그렇게나 좋아하셔요. 오늘은 그라드네라의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 듣거나 읽어보는 설화 모음집을 읽어드렸지요. 여러 지역에서 구전되는 이야기를 각색하여, 그림과 함께 모아둔 것으로 테레하 님이 제법 좋아하시는 책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오늘따라 테레하 님은 책에 좀처럼 집중을 못하시고, 화단의 꽃에 골몰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조금 걱정스러운 눈치로 바라보았습니다. 영주님께서는 작은 주인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아주 세심히 살피시는 탓에 이 정원에는 어린아이에게 해롭거나 가시가 있어 다칠 수 있는 것, 그런 건 전부 치워놓았다지만, 오늘 아침 애써 입혀드린 고운 옷가지가 흙으로 망가지는 건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곧 테레하 님은 조막만 한 손으로 여러 들풀이며 꽃을 꺾어 품에 안고 돌아오셨습니다.
"카라샤, 카라샤는 화관 만들 수 있어?"
"어마, 화관은 무슨 일로요?"
소매며 무릎팍에 묻은 흙을 가볍게 털어드리며 되물었더니, 테레하 님은 조그마한 입술에 미소를 한가득 띄우셨습니다.
"으응, 만들어서 아빠랑 어머님께 가져다드리고 싶어! 있지, 그 이야기 속에서도 그랬잖아…."
머뭇머뭇 털어놓으시는 것을 듣고 있으니, 다름이 아니라 아까 책에서 보신 것을 기억하고서 그러신 모양입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개선하는 연인에게 씌워준 것이었으나 가족에게 씌워주는 건, 뭐어, 이리도 기뻐하시는 걸요. 굳이 찬물을 끼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저는 마찬가지로 웃음으로 답했습니다.
"그럴까요? 그러면 줄기가 더 굵은 꽃인 게 좋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응!"
정원사에게 말해 가위를 빌려온 저는, 제가 보기에 줄기가 튼튼하고 적당히 자란 꽃들 앞에 서서 테레하 님이 손가락으로 요리조리 짚어주시는 것들("저쪽의 파란 거! 으응, 아니야! 저쪽에 저거!")을 잘라내었습니다. 그런 다음엔 화관을 만들기 위해 꽃을 엮는 법을 알려드렸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 중 가장 쉬운 방법을 알려드렸어요. 먼저 줄기 가운데를 살짝 가르고, 그 사이로 다른 줄기를 넣은 뒤 다시 줄기를 갈라 다른 꽃을 엮는 것이지요. 테레하 님이 직접 만들고 싶은 눈치셔서 저는 시작하는 부분만 만들어드린 뒤 직접 해보시게 했지요. 꽃 여러 송이를 들고 잠시 낑낑대던 작은 주인님은 입술을 툭 내밀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이거, 어려워…." 이리저리 조물조물하는 동안 줄기가 짓물러버린 모습입니다. 아무래도 그 어린 손으로는 원하는 만큼 정교하게 되시지 않는 모양이라, 저는 쿡쿡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믄 하시기 좋게 제가 가운데만 갈라드릴까요? 테레하 님이 이렇게 엮기만 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 조심스럽게 되물은 테레하 님은, 곧 커다란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습니다. "카라샤가 도와줬어도 아버님한테는, 비밀로 해줄 거지?"
"아휴, 물론이지요, 도련님. 카라샤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씀드릴게요." 저는 주인님의 깜찍한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다정히 대답했습니다. 그 나이대 아이라면 '직접'을 무엇보다 중히 생각하잖아요? 무엇이든 제 손으로 직접 해보고 싶어 하는 것도 있겠지만, 선물로 드릴 요량이라 하셨는데 남이 도와주었다면 또 모양이 나지 않는 법이지요. 하얀 얼굴에 방싯방싯 미소가 다시 떠오르는 것을 보니, 내 아이도 아닌데 참으로 귀엽다 그런 생각을 하고 맙니다.
저는 화관으로 엮을 꽃의 줄기를 갈라서 테레하 님께 건네 드리고, 테레하 님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줄기를 엮으셨습니다. 적당한 길이로 엮어낸 뒤에는, 좀 더 단단하고 풍성한 꽃을 가져와 머리카락을 땋듯 엮어 보강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테레하 님의 작은 손가락으로는 무리라 이 단계는 비록 제가 일일이 그 과정을 도와드렸다고는 하나, 이 정도면 작은 주인님이 만드신 거나 다름없다, 하고요. 아무래도 엉성한 모양이긴 하지만 테레하 님의 마음에는 흡족하신 모양입니다.
"카라샤, 이제 가져다드리러 가자!"
두 개의 화관을 만드는 동안 제법 시간은 흘러, 오후 다과 때가 지난 참입니다. 본래는 이런 간식까지도 타낫세 님이 직접 챙기시고는 하지만 오늘은 방문객이 있어 제가 테레하 님의 오후 시간을 맡게 된 것이지요. 이 시간 즈음이면 접객이 끝났을 것이라 생각한 저는, 옷가지를 털어 정돈해드린 다음 저택 안으로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이 시간에는 두 분이 서재에 계신다는 건 테레하 님께도 아시는 참이기에 저 홀로 도도도 걸어가는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지요.
서재의 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습니다. 때마침 차를 준비해온 다른 시종과 마주쳐 저는 대신 쟁반을 건네받았지요. 테레하 님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안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으시고, 이내 환한 웃음을 띄고 서재 안으로 쪼르르 들어가셨습니다.
"아빠! 테레하가 만든 것 좀 보세요."
"아, 시간이 벌써…… 어서 오렴, 아가."
이제야 막 방문객이 나간 듯, 테이블 위에는 치우지 못한 여러 서류가 즐비했으나 타낫세 님은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한 손길로 테레하 님을 품에 안아 드셨습니다. 미미한 피곤함과 짜증이 어려있던 이목구비에 화사한 웃음이 서리는 광경은, 아무래도 왕성에서 내려오신 첫날부터 모셔온 제겐 보고 또 보아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때는 그리도 자주 웃질 않으시던 분이 아휴, 이제는 아주 수초처럼 흐물흐물해지셔선……. 처음엔 그리도 얼음 같고 송곳처럼 뾰족해 보이시던 분이, 이 저택에서 제일로 팔불출이시라는 사실을 인제 저는 알지요.
타낫세 님의 품을 당연하게 차지하신 도련님은 해맑게 웃으시며 보기에도 참 앙증맞은 화관을 꺼내 보였습니다.
"이거! 선물이에요! 아까, 카라샤랑 정원에 나가서 만들었는데요…."
"직접 만든 거니? 정말로 잘 만들었네. 우리 아가는 손재주도 좋지."
"씌워드릴게요!"
바동거리는 테레하 님을 바닥에 내려놓고, 타낫세 님은 마치 서임을 받는 위사처럼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도련님의 눈높이에 맞춰 고개를 숙여주셨습니다. 도련님은 화관 중에서도 특별히 타낫세 님을 위해 만들어 예쁜 푸른색 꽃이 장식된 화관이 사뿐히 얹어집니다.
"아빠는 제가 제일로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선물로 주는 거예요."
작은 주인님은 화관을 하사한 뒤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타낫세 님은 마찬가지로 기쁘게 웃으시며 테레하 님을 도로 안아 무릎 위에 앉히셨습니다. 테레하 님은 그 품에 안겨 무어라 종알종알 떠드시고, 흐뭇한 광경을 보며 슬그머니 미소 지었던 저는 저만치 서 있던 거구의 위사에게도 고개로 인사하며 들고 온 쟁반을 내실로 옮겼습니다.
"카라샤, 고생이 많구나."
레하트 님은 뒤에서 사뿐사뿐 걸어 나와 제게 빙긋이 웃어주셨습니다. 인제는 완연히 여유로운 영주의 자태가 나는 주인님은, 전에 글자를 가르쳐주신 일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제게 언제나 친절하고 영지민에게도 다정하신 분입니다. 그때부터 꽤나 긴 시간이 지나 저는 그분의 수족이라 자부할 수도 있는 몸이 되었지요(아마두요). 그때 뒤에서 타낫세 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레하트, 이것 좀 보지 않겠나. 테레하가 선물로 주고 싶은 게 있다는데."
"정말이니? 엄마한테도 보여줄래?"
레하트 님은 제 어깨를 한 번 다정히 짚어주신 뒤 두 분이 계신 곳으로 향하셨습니다. 저는 다과 준비를 위해 테이블보니 찻잔이니 하는 것을 꾸리며, 그쪽을 슬쩍 바라보았습니다.
"이거요, 이야기책에서 읽었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는 거라고 했어요! 아빠한테는 벌써 드렸고 이거는 어머님 드릴 거예요."
"정말로 고마워, 테레하. 색이 아주 예쁘네. 화관 만드는 법은 어디서 배웠니?"
"카라샤한테서요! 있죠, 아까 읽은 책이……."
서로를 꼭 닮은 가족끼리 붙어서 즐겁게 웃는 광경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타낫세 님이 무릎 위에 본인의 아이를 앉히고, 저리도 행복하신 얼굴을 하시는 날이 올 거라고요. 저는 비록 두 분을 왕성에 계실 적부터는 모시지 못했지만, 그래서 두 분께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든 간에 지금의 이 행복한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모시고 있노라면 제가 다 감격스럽답니다. 한낱 사용인의 입장에서, 앞으로도 이 저택에는 이렇게 기쁨으로 충만한 날들만 가득하길 바라게 될 만큼요. 그래서 저는 차의 준비를 전부 마치고서도 세 분의 단란한 분위기에 차마 끼어들지 못하고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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