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2
커미션//루죤 애정A

*공백 포함 3,576자
*카모카테 루죤/레하트 애정A 기반


마술사 둘―정확히 말해서 하나는 아직 마술사라고 불리기엔 갈 길이 먼 애송이 조수였지만, 어쨌든―이 사는 집의 일상은 늘 비슷했다. 매일은 느리고 목가적으로 흘러갔다.

새 우는 소리에 일어나 불을 확인하고,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하면 식사를 준비한다. 두 사람만이 함께 하는 식탁은 늘 소박했다. 곡물로 만든 거친 빵과 토록에게서 짠 우유. 달걀. 먹을 만한 푸성귀. 그다음은 온종일 약초를 뽑고, 태우고, 자르는 일이었다. 마술사 일은 먹고 사는 기술로만 놓고 보자면 그 위험성에 비해 큰 돈벌이는 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는 됐다. 장이 서면 내다 팔 고약과 물약을 만들고, 약초 따위를 가지런히 말리고, 그다음은 조수 녀석에게 마술을 가르치며 명상을 하고, 할머니의 책을 곰팡이가 슬지 않게 말리다 보면 어느새 해가 졌다. 물론 그 사이사이 자질구레한 일들―장작을 패거나 물을 길어오거나 지붕의 금가고 무너진 부분을 고치거나 하는 일들도 빼놓을 수는 없었다. 물론 그런 건 전부 조수 몫이었다.

그래도 레하트는 한동안 왕성에서 지내던 녀석 치고는 살림 솜씨가 썩 나쁘지도 않은 편이었지만. 루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할머니가 산으로 떠난 이후로, 이 작은 오두막에서 레하트와 공동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자신은 말한 적도 없는데 멋대로 남성을 선택한 것이나, 그래서인지 먹인 것도 별로 없는데 나무처럼 쑥쑥 자라버려서 귀여움이라곤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꼭 오래 전부터 살던 집처럼 자연스레 돌아다니며 요리며 청소며 하는 모습을 보면 밉살스럽다가도, 가끔은 쓸모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람의 부재가 티 나지 않아서…… 하여튼.


그렇지만 오늘은 유난히 그 모습이 거슬리는 날이었다. 아마도 오늘 낮에 "루죤, 루죤, 있지―" 하고서 들꽃 한 다발을 들고 뛰어 들어온 순간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물론 꽃은 제법 예쁘긴 했지만, 약을 만드는 데에 활용할 수도 있는 걸 동강동강 꺾어 가져왔길래 가볍게 한 소리를 하고 말았는데도, 그걸 장식해두겠다고 꽃병을 찾아오고는 결국 집 한쪽에 두고 제 반응을 살피듯 바보같이 웃는 꼴을 보니 어쩐지 신경이 쓰여서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원래 저녁 식사는 레하트가 만들기로 되어 있었는데도 괜한 일을 만들어("마당도 다시 청소하고 그 다음에 물도 넉넉하게 길어놓고 장작도 더 쪼개 놔") 부엌에서 쫓아버렸다.

그렇지만 별다르게 할 일은 없었다. 어차피 점심으로 먹다 남은 것에 몇 가지를 더할 뿐에, 레하트가 언제 잽싸게 움직인 것인지 불도 알아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루죤은 당근, 샐러리 따위의 야채를 다듬어 남은 스튜에 털어 넣고, 무쇠로 된 팬 위에는 레하트가 낮에 잡아 온 생선을 올렸다. 간혹 운이 좋으면 호수와 이어진 개울에서 눈먼(레하트에게 잡히다니 그런 것이 틀림없다) 고기가 몇 마리 잡혔다. 팬에는 타임 한 줌을 뿌린 뒤 뚜껑을 닫았다.

솥이 끓고 생선이 구워지는 냄새가 나자 슬금슬금 돌아온 레하트는 찬장에서 식기를 꺼내고 빵을 자르는 등의 일을 하며 눈치를 살피는 듯싶더니, 제 뒤로 와서 슬쩍 섰다.

     "나머지는 내가 할까?"
     "방해되니까 가만히 있기나 해."
     "네……."

흘긋 바라보니 장작을 패는 대신 어디 풀밭에라도 누워 있다 온 모양인지, 옷깃에 풀물이 든 걸 보니 한숨이 났다. 어차피 빨래도 조수 몫이니 상관도 없었지만. 괜히 끓고 있는 스튜를 국자로 괴롭히다 그만두었다. 와중에 바보가 잡아 온 생선이 지글지글 익으며 나는 냄새는 또 좋았다. 정말이지 이것도 저것도 투덜대고 싶은 일 뿐이다.

스튜에 넣은 야채가 충분히 무르자, 불쏘시개로 장작을 이리저리 흩고 스튜를 끓이던 솥 대신 물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다 익은 생선도 옮겨 담고 스튜도 각자의 그릇에 퍼 담았다. 테이블 위로 옮기는 것은 레하트가 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루죤이 스푼을 들면서 보니 아까 그 꽃병이 테이블 한 가운데에 있었다. 샛노란 꽃잎이 풍성하게 달린 줄기는 그 소박함이 꽃보다는 차라리 들풀에 가까웠지만, 향기만큼은 은근히 달큰하고 싱그러웠다. 줄기를 물에 담가둔 탓에 여전히 생생했다. 낮의 일이 다시 떠올라 괜히 시선을 홱 돌리게 된다. 밥만 먹으면 되지, 무슨 상관이야. 루죤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죄 없는 스튜만 푹푹 퍼먹었다.

문득 고개를 드니 앞에서는 레하트가 생선을 바르는 데에 열심이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고 요리조리 생선을 분해하는 레하트는 제법 귀족님처럼, 예법을 배운 티가 나기는 했지만 이제 마술사가 된 신세다. 그런 습관이야 크기가 맞지 않아 손목이나 발목이 튀어나오는 옷 같은 것이다. 그런데 흘긋 보니 스튜는 손도 대지 않은 것 같다. 루죤은 불쑥 물었다.

     "스튜는 왜 안 먹어?"
     "어, 어? 먹어! 먹을 거야. 그, 생선 식으면 맛 없으니까……."
     "스튜도 식으면 맛 없어."

그렇게 말하자 티 나게 어색한 태도로 스튜 그릇을 끌어당긴다. 그리고는 스푼을 들어 먹기는 하는데, 낮에 먹은 음식인데도 새삼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이상해서 루죤은 빵 조각을 뜯으며 그 모습을 관찰했다. 잘 보니 뭔가 건더기를 미묘하게 골라내며 깨작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툭 내뱉었다.

     "그러게 얌전히 성에 있었으면 더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뭐 하러 기어 나와서는."
     "그런 거 아니야……!"

레하트는 허겁지겁, 앞에 두고 있던 그릇에 숟가락을 푹 집어넣었다. 그대로 입에 가져다 넣던 그 녀석은 어쩐지 허둥댄다 싶더니 음식 대신 식기를 딱 깨물고는 순식간에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
     "루, 루죤……."

키는 처마에 닿을 만한 녀석이 얼뜨기처럼 구는 모습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이쪽의 눈치를 살피듯 쳐다보는 것까지 아주 완벽했다. 레하트는 발라낸 생선이 담긴 그릇을 루죤을 향해 밀어주며 변명을 우물거렸다.

     "저, 절대 루죤이 해준 음식이 맛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익힌 당근을 별로 안 좋아해서."
     "………."
     "못 먹는 건 아닌데……."

푹 익히면 물렁물렁해지는 것이 싫다, 생으로 먹을 때랑은 다르게 맛이 이상해진다 하면서, 평소엔 온갖 쓸데없는 소리를 당당하게 하던 녀석이 말꼬리를 잡아먹은 듯 우물거리는 것을 보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더 어이없게도 기분이 약간 나아졌다. 루죤은 뜯던 빵 조각을 스튜 안에 던져넣었다.

     "그래도 다 먹어. 여긴 왕성처럼 하나하나 가리고 있을 그런 여유는 없으니까."
     "당근 못 먹는 조수는, 필요 없는 거 아니지……?"

그러더니 정말 무슨 길 잃은 동물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을 애처롭게 쳐다보는 게 아닌가. 루죤은 고개를 내저었다. 뭐, 레하트가 제 아무리 키가 쭉쭉 자랐다고 해도 분화를 마치고 남성이 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고, 그런 만큼 매일 바보 같은 소리나 하고 있지만 가끔은 예전 같아 보여서…… 아니, 아니지. 그때 레하트가 답싹 고개를 들이밀며 되물었다.

     "……루죤? 응?"
     "그, 그런 쓸모없는 질문을 하는 녀석은 쓸 데가 없다는 거야……!"

저도 모르게 루죤은 볼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레하트가 뭔가 더 쓸모없는 소리를 하기 전에 입을 막아야 했으므로, 그런 소리를 한 번만 더 하면 한밤중에 집 밖으로 쫓아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그런 협박을 한두 번 당해본 게 아닌 레하트는 이제 아예 당당히 웃으며 쓸모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 식사는 조금 늦게 끝나고 말았지만 어쨌든, 남은 당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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