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으면서 향수 취향이 꽤 바뀐 편이다.
새내기 즈음엔 달콤한 과일 계열이나 파우더리하고 페미닌한 향을 좋아했는데
점점 "나 생각보다 우드 좋아하네? 머스크도 좋아하네?" ... 하고 좀 더 유니섹스한 향수로 바뀐 편.
여자향 남자향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 하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
아무튼 .
세상으로부터 나를 격리 중인 요즘... 향수 한번 시향해보자고 멀리 나가기도 귀찮아서
온라인 시향 서비스인 퍼퓸 그라피 센츠하다를 이용했다.
마음에 드는 것 몇 가지를 고르면, 그 외에도 추천 시향 키트를 더 넣어주신다!
탑노트는 시향해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일단 뿌리고 다닌다고 했을 때 실질적으로 맡게 되는 건 미들~베이스의 잔향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고 이용해봤다.
요즘 샌달우드에 꽂혀서...^^
이번에 시킨 건 전부 상탈 계열임.
왜 꽂히게 되었는지는... 추후에 설명. (otaku의 비애)
1. 르 라보 상탈 33
*싱글노트-카다멈, 아이리스, 바이올렛, 오스트리안 샌달우드, 파피루스, 시더우드 etc
유명한 르 라보의 상탈 33~...
한약방 냄새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던데 이해될 정도로 확실히 진하다.
진하고 축축(not 촉촉)한 샌달우드&시더우드&파피루스...
나무보다는 가죽향에 가깝다는 후기도 꽤 있던데
나는 가죽도 가죽이지만 안개 낀 숲 같은 느낌을 받았음.
안개 낀 숲의 축축한 이끼 낀 나무... 같은 그런 향기?
스모키함 속에서 싱그러움, 푸릇푸릇함이 또 느껴져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향에 변주가 된 듯한.
오래 맡으면 맡을수록 좋은 향. 살에 뿌렸을 때 잔향이 궁금해짐
2. 르 라보 어나더 13
*싱글노트 암브록산, 애니멀머스크, 모스, 재스민, 암브레트 시드 압솔뤼
얘는 샌달우드라 산 건 아니고 그냥 관심... (;0
(암브록산은 용연향이다.)
진짜 살갗 냄새다.
맡아보지 못한 그런 향이라 처음 맡았을 때는 진짜 깜짝 놀랐음.
살짝 울렁울렁... 역하기까지(;) 했다.
호불호 찐하게 갈리겠구나 싶음.
그런데 맡으면 맡을수록... 은은한 머스크가 참 좋다.
머스크인데 시중의 그런 머스크보다는 애니멀릭함.
다른 머스크는 하얗고 향기로운 느낌이라면? 얘는 웜톤에... 살짝 끈적함이 느껴지는 그런 향임.
그리고 머스크 말고도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 했더니 재스민 때문에 우디한 향기도 살짝 가미되어 있음.
3. 프라고나르 상탈 EDT
*탑노트-그린만다린, 사이프러스, 레몬 / 미들노트-오스트레일리아 샌달우드, 머틀, 로즈마리 / 베이스노트-시더우드, 머스크
입문용 상탈이란 말이 있던데 이해했음.
확실히 다른 상탈보다 가볍다!
비 맞은 나무 같은 느낌.
살짝 시트러스 같은 청량함이 먼저 느껴지고, 여러 번 맡아야 그 속의 차분한 우드가 느껴진다.
이끼처럼 축축하고 가라앉는 느낌보다는 촉촉~한 그런 향? 싱싱한 톱밥 같음
4. 딥디크 탐 다오
열자마자 '절 냄새'라는 표현을 그대로 이해해버림.
사찰의 고즈넉함과 동시에 '진짜 나무' 냄새가 난다.
절에 있는... 다듬어둔 나무 기둥 같다. 거기에 코 박고 있으면 이런 냄새가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살짝 싱그러운 느낌도 있는데 궁금해서 찾아보니 사이프러스&히든노트 머틀이라고 하네.
나무향 이후에는 가라앉은 향기가 난다.
착 가라앉은 고요한 향기가 마음에 안정을 줌...
이런 향이 나는 사람 있으면 어쩐지 믿음이 갈 듯함. 미쿠리가 표현하는 히라마사 생각남(ㅋ). 그런 향임.
혈육 왈 "향은 좋은데 이건 나보다는 물건에서 났으면 좋겠어"
이 말도 약간 이해.
5. 크리드 오리지널 상탈
얘는 사려고 리스트에 넣은 게 아니라 그냥 향이 궁금해서 넣었다.
이번에 온 것들 중엔 가장 남성적인 향기에 속하는 것 같다.
완전 클래식한 남자 향수 st. But 차갑지 않고 따뜻한 계열.
열자마자 !! 하고 후각에 느낌이 왔을 만큼 묵직하고 스파이시하다.
처음 맡았을 땐 알코올 같은 느낌이 강하게 왔는데
(스킨 같았음. 하지만 특유의 물내는 안 느껴졌다)
적응될수록 그런 파릇함 속에 숨겨진 우디함이 느껴진다. 묵직하고 따뜻하고.
무거운 갈색 롱 코트가 생각나는 그런 향.
6. 세르주르텐 상탈 마제스퀄 EDP
*탑노트-로즈 / 미들노트-통카빈, 로즈우드 / 베이스노트-샌달우드, 코코아
이건 내가 넣은 거 아니고 추천으로 온 것.
이번에 온 것들 중에서 가장 부드럽다고 느껴졌다.
실크보다는... 벨벳의 도톰한 부드러움이라고 해야하나?
처음 맡았을 때 일단 든 생각이 어? 왜 달콤하지? 였는데, 로즈우드&코코아를 보고 납득.
씁쓸한 느낌이 있는데 동시에 달다. 과일처럼 단 게 아니라... 부드럽게 코를 간질간질.
고혹적인 느낌이라 적혀 있던데 딱 맞는 설명.
여기까지가 이번에 이용해본 센츠하다의 시향 키트.
마지막 세르주르텐 같은 경우는... 넣을까 말까 하다가 안 넣었던 거였는데 추천 키트로 와서 매우 기뻤다!
내가 궁금했던 상탈 테마의 향수 중에 퍼퓸 그라피에 없는 것도 꽤 있어서...
그건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직접 시향해보기로.
참고로 상탈은 샌달우드의 불어식 표현으로 한국어로는 백단향이다.
백단나무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 하여간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내가
백단나무 향에 꽂히게 된 이유는
매들린 밀러의 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에 등장하는 '석류와 백단 나무 향유'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니 궁금하잖아요
그냥 오일로는 향 맡아봤는데 향수는 어떨지 궁금해져서 그랬음
왜요 뭐 오타쿠 처음 보시냐구요 ?
아킬레우스의 노래 읽어주세요 일리아스의 21세기 캐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