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카/레하트(여분화)
로니카 애정B 엔딩 이후
개인 설정이 있는 왕 레하트
사망 소재 주의.
이른 아침부터 왕성이 소란합니다. 다들 부산스럽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에서 어쩐지 불온하기까지 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 밤, 왕의 침소에서 한바탕의 소동이 있던 탓입니다. 제 위로 조금이나마 경력이 있는 시종들은 일의 처리를 위해 전부 차출되어버렸다지요.
저는 폐하의 직속 시종 중 한 명으로, 왕성에 들어온 지는 이제 여섯 해가 넘어가는—폐하의 시종 중에서는 한참 신참에 속하는 시종입니다. 평소에 레하트 폐하를 모시기는 해도 곁방에는 머물지 못하는 말단 중의 말단이지요. 이전에 계승자의 지위에 머무셨을 시절 레하트 님의 방을 맡았던 사냐와 친분이 있어서, 이렇게라도 폐하를 모시게 되었으니 대단한 영광이지만요. 언젠가는 폐하를 모신 경력이 도움이 되어 다른 귀족분의 방 담당으로 승진하는 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아이참, 이런 상황에서도 제 얘기만 잔뜩 늘어놓고 말았네요.
저는 이렇듯, 상급자가 없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다른 사용인들 틈바구니를 헤치며 홀로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갔습니다. 지하로 가는 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선배가 알려준 길을 따라 몇 개의 모퉁이를 돌고 계단을 내려가고 하니, 위사 둘이 지키고 있는 방 앞에 도착합니다. 제 얼굴을 알아본 그들은 형식적으로 몸 수색을 하고는 까딱 고개를 끄덕여요.
저는 최대한 인기척을 내지 않게 조심하며, 살금살금 안으로 듭니다. 이곳은 왕성 깊은 곳에 위치한 석실石室로, 햇빛은 들지 않지만 바람이 잘 통해 온종일 기온이 낮고 서늘한 장소입니다. 평소에는 사용되지 않고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열리는 방이라고 해요.
……방 안에는 폐하가 홀로 계셨습니다. 제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오랫동안 그 자세로 계셨던 것 같았어요. 제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셨을 텐데도 별다른 말 없이, 차가운 돌바닥에 앉아 관 위로 길게 허리를 기울인 채—마치 그것을 감싸 안듯이 기대어 계셨답니다. 자세가 몹시 불편해 보였으나,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한 등을 보니 덮으실 천이라도 가져다드릴지 감히 여쭐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사실 폐하는 이 석실에 드시며 모두 물러나라 명하셨지만, 아무리 그래도 왕의 곁에 수발들 사람을 한 명도 두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질 않잖아요? 그리고 어젯밤의 일도 있고, 또 그렇게 명령하셨을 적에도 늘 곁에 두셨던 단 한 명, 그분도 계시질 않아서…… 하여간 제 선임들은 말단 중의 말단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불러 이곳을 지키고 있으라고 명령했답니다.
네? 아아, 그래요. 관은 말이지요.
로니카 씨가 지난 밤, 암살자로부터 폐하를 지키다 산에 오르셨다고 해요. (폐하의 곁을 지키고 있었을 다른 위사들은 무얼 했던 걸까요!) 정말이지 폐하가 무사하셔서 다행이고, 그런 죽음은 시종들의 귀감과 같은 일이라지마는, 그래도 너무나도 슬픈 일입니다. (로니카 씨는, 저한테 과자도 얼마나 많이 주셨었다구요.) 감히 레하트 폐하의 침소에 잠입한 암살자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고 해요. 저는 공용 숙소에서 자느라 그 소동에 대해서는 오늘 아침에 알게 되었답니다.
로니카 씨는 폐하께서 아주 신뢰하시어 총애자이던 시절부터 늘 곁에 두신 분이라 해요. 레하트 님이 즉위하신 이후로도 쭉, 폐하의 시종장을 맡고 계셨지요. 사용인들 사이에서는 두 분 사이 각별함이 유명하답니다. 감히 저희끼리 하는 말이지만 이를테면, 열넷의 나이로 천애 고아가 되어 왕성에 도착하신 레하트 님께는 그분이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다나요. 말단 중의 말단 시종인 저도, 폐하를 모시는 중에 두 분의 친밀한 간격을 몇 번이나 보아온 참입니다. 평소 성정이 칼날 같이 단호하다 유명하신 폐하께서도 그분 앞에서는 부드럽게 표정이 풀어지곤 하셨다니까요? 거기다 혼인을 하시지 않아 다른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셨으니 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러니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요? 보세요, 지금도. 사람을 모두 물린 채 로니카 씨의 시신이 담긴 관 앞을 홀로 지키고 계시잖아요. 시신을 아직도 신전으로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폐하께서는 분명 홀로 인사를 할 시간을 갖고 싶으셨던 게 분명해요. 정말 다정하신 분이세요.
그렇게 레하트 님은 제가 들어온 뒤에도 오래 관을 들여다보고 계셨어요. 로니카 씨는 수의가 아니라 생전에 입던 복장을 그대로 입고 계셔서, 얼굴이 아주 창백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냥 잠들어 계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레하트 님께서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시신만을 바라보고 계셔서, 지독한 적막감에 슬슬 제가 선 채로 졸음에 빠질 무렵, 무어라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려 퍼뜩 잠에서 깼답니다.
"……무엇이 신의 총애야. 아네키우스 님도, 무심하시지."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전부 이렇게 앗아가버리는 걸."
속삭이는 목소리가 물기 하나 없이 건조하여 되레 코끝이 찡해졌답니다. 일가친척 하나 없이 들어온 왕성에서, 얼마나 로니카 씨를 소중히 여기셨으면 이렇듯 따로 시간을 들여 애도하고 계실까요. 레하트 님은 조심히 손을 뻗어, 잠든 듯 눈을 감은 로니카 씨의 얼굴을 손끝으로 덧그리듯 어루만지십니다. 이루 말하지 못할 만치 애틋함이 묻어나는 손길입니다.
"정말이지, 당신도…… 그렇게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내가 무어라 할 수가 없잖아. 내 곁을 그리도 떠나고 싶었던 건지."
다정하고 힘없이 소곤대는 말투에는 왕의 위엄이 없습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저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도록 깊은 원망입니다.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이는 많이 보아왔어요. 애당초 아끼던 애완조가 죽어도 호수를 채울 만큼 울 수 있는 게 사람이라잖아요? 그러나 레하트 님은 꼭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눈물 한 점 흘리지 않으시고, 되레 죽음을 책망하는 어투라, 그 괴리감에 피부가 따끔따끔해졌습니다.
"나도 당신을 따라갈까?"
이 넓은 석실 안에 답하는 이가 누구도 없어서, 레하트 님의 목소리가 조금 메아리치듯 울립니다. 그 울림이 귓가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레하트 님이 하신 말씀의 뜻이 와닿아 놀라고 말았어요. 신의 나라로 가겠다니, 이곳에 신관이라든가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누가 듣기라도 했을까 제가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말았을 만큼요. 그러나 폐하는 그 무엇도 생각할 겨를 없는 듯, 신경질적으로 뇌까리십니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당신도 없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아무도……."
총애자는 산을 올라 하늘로 가고, 다른 평범한 이들은 산에 가라앉아 다시 태어날 때를 기다린다는 익숙한 믿음이, 가르침이―마치 저주라도 되는 듯이요. 신께서 총애하시어 곁에 두신다는 징표가 내려진 자신을 탓하기라도 하는 듯이요.
"그러니 당신과는 오늘로 마지막이구나."
"……."
"안녕, 로니카 벨 하라드."
속살거린 레하트 님은 관 속에 잠든 그분께 입을 맞추시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듯 아주 오래, 정성스럽게. 아니, 제 착각인지도 몰라요. 그때 폐하의 긴 머리카락이 시신을 덮는 천처럼 드리워진 탓에 뒤에서 바라보던 저는 짐작만 할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폐하는 그 뒤로도 미련이 남은 듯이 관을 오래도록 붙들고, 안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분의 옷가지를 꽉 움켜쥐고 계셨답니다.
보아서는 안될 광경을 보았다는 생각에 저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한 번, 두 번, 세 번…… 열 손가락을 열 번씩 헤아리는 것을 열 번, 그것을 다시 열 번 정도 하였을 무렵, 물새처럼 유연히 몸을 일으키신 폐하는, 저와 눈을 마주치자 빙그레 웃어 보이셨답니다. 마호가니 빛깔의 눈동자는 오랫동안 사용한 가구처럼 마모된 빛깔이었어요. 레하트 님은 곧 제게 비밀로 하라는 듯이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시고는, 매끄러운 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밖으로 향하시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폐하의 뒤를 따라 석실을 나섰지요. 뒤에는 그분의 관만이 남아 있었답니다.
공식이 .. 입술박치기 하려면 일단… ㅁㅁ ㅁㅁㅁ 하래서 실천하는 총애자 되었을 뿐이에요
이 루트의 레하트는 다음대 총애자 발견되자마자 퀵 양위하고 싶어서 미쳣을 듯... 그러고 어딘가로 칩거했다고 하는데 행방이 묘연하고 어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