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1
커미션//타나레하

*공백 포함 4,247자

*카모카테 타낫세/레하트 애정B 엔딩 기반

 

*의도적으로 현실과 맞지 않는 묘사를 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또한, 게임 내에 존재하지 않는 설정의 경우 창작입니다.

*단골님 커미션...항상 즐겁습니다^_^

 

 


 

 

 

   이른 새벽, 타낫세는 불안한 발걸음으로 산실(産室) 앞을 오가고 있었다.

 

 

   그와 레하트의 첫 아이였다. 지난 일 년 간은 전부 처음이라 낯설고 긴장되는 일투성이였다. 직접 아이를 품고 있는 레하트는 말할 것 없었고, 타낫세에게 있어서도 다른 의미로 그러했다. 무엇보다, 그가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가장 낯선 일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런 인간이지 않았던가?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타낫세의 삶에 있어서 '아버지'라는 존재는―커다란 부담감을 안겨주었을지언정, 타낫세라는 인간의 일상에 있어서는―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러운 불안과 두려움이 때때로 그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레하트가 곁에 있어 주었다. 손을 잡고 확신과 안정을 나누어주었다. 무엇보다, 레하트와의 아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를 가장 안심시켜주곤 했다. 이 사람과는 분명 어떤 일이 생겨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 확신으로 일 년을 꼬박 채웠다.

 

 

   그렇게 일 년, 여섯 달, 일찍이 출산의 달을 앞두고서부터는 영지의 의원을 아예 저택에서 머물도록 했고, 산파에게도 즉시 인편을 보낼 수 있도록 해두었기에 레하트가 진통을 호소하자마자 큰 무리 없이 출산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산파가 도착하자 영주 내외의 침실은 산실로 바뀌었고, 타낫세는 밖으로 쫓겨났다. 제대로 옷을 챙겨입을 시간도 없어 아직도 침의 차림이었다. 아까 시종을 부르러 갔을 때부터 이 차림이었으니, 평소라면 이런 모습을 사용인에게 보이는 일은 생각도 못 했을 것인데 어지간히 다급하게 움직인 모양이었다.

 

 

   타낫세는 산실 앞의 짧은 통로를 서른 번 정도 왔다 갔다 하다가, 출산을 도우러 온 나이 지긋한 시종으로부터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 벌써 유난스럽게 굴면 안 된다'는 투로 한 소리를 듣고서야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안에서 여러 사람이 부산스러운 소리, 레하트가 짧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와 좀처럼 진정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차분해지질 않아 점점 불안해졌다. 출산 과정에 대해서는, 임신 중의 연결과는 달리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오로지 레하트가 견뎌내야 하는 일이었다.

 

   타낫세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레하트를 살리는 쪽을 택하리라 마음 먹었다. 아이와 레하트 중 한 명을 고른다니, 그런 것은 조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타낫세로서는 현재 앞날에 대해 걱정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레하트가 이런 제 생각을 알았더라면 분명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애초에 공연한 걱정이라는 것도 알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타낫세는 레하트가 생명이 위험해지는 일 따위를 다시는 겪지 않길 바랐다. 이전의 사술이 오래도록 마음속 부채로 남은 탓이기도 하였으나, 그 이상을 넘어서 레하트는 제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레하트는 이미 자신의 삶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선사했고, 좁았던 제 시선과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그렇기에, 어떤 이유에서든 그녀의 부재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을 즈음엔 무릎까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타낫세 본인은 그런 줄 모르고 있었지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시종이라도 불러 안의 상황을 확인해보아야 하나 싶었던 그 순간, 응애응애,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문이 삐걱 소릴 내면서 열렸다. 타낫세는 마치 접혀 있던 용수철처럼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밖으로 고개를 내민 산파가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때부터 귓가가 조금 멍해졌다. 그다음부터는 무슨 정신으로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시야가 여러 가지 색깔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하필 그런 생각을 직전까지 하고 있었던 탓에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하고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 종전까지는 갈비뼈 께에서 출렁거리던 걱정이 순식간에 목 끝까지 차오른 느낌이었다. 시종이 시키는 대로 손을 씻은 뒤 내실 안으로 거의 뛰다시피 들어갔다.

 

   "―레하트? 괜찮나?!"

   "타낫세."

 

   작은 목소리가 침대 맡에서 들려왔다. 타낫세는 급히 곁으로 갔다. 희미하게 피 냄새가 감돌았다. 땀에 젖고 조금 수척해진 인상이었으나 그녀는 시선이 마주치자 옅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친 듯하였지만, 그 이상 기쁨으로 충만한 얼굴이었다. 나는 괜찮아, 그리 속삭인 레하트가 손을 뻗어 와서 타낫세는 급히 맞잡았다. 타낫세는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네가 무사하다면 됐어."

   "응." 레하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늘 웃는 방식대로, 배시시 웃어주었다.

   "정말 고생 많았다, 레하트……."

   "타낫세 님."

 

   그때, 작은 포대기를 든 시종이 곁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심장이 더욱 불규칙하게 뛰었다. 시종이 그의 품에 아이를 안겨주었다. 시종의 얼굴에도 그의 주인과 마찬가지로 기쁜 기색이 넘쳐났다.

 

   "건강한 아드님이에요."

   "아……."

 

   갓 태어난 아이는 작고 붉었다. 너무나 가벼워 마치 인형을 안은 것처럼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부서질 것처럼 느껴져, 손가락에 힘을 주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혹여나 떨어뜨리기라도 할까 온몸이 긴장되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품에 안고, 천천히 모습을 살피었다. 레하트를 닮아 새까만 머리카락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그리고 아이의 이마에는, 선정인이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의 은총 따위 새겨지지 않은, 깨끗하고 동그란 이마였다.

 

   "우리 아이야, 타낫세."

 

   레하트가 속삭였다. 품에 안은 아이의 체온이 뜨거웠다. 그제야 다른 의미로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안도감에 불현듯 눈물이 쏟아졌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옆에서 시종이 무어라 말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타낫세는 안은 팔에 가만히 힘을 주었다.

 

   "아아, 정말로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선정인 때문만이 아니라, 레하트와 아이가 둘 다 건강하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참을 수 없이 기뻤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물이 나서, 보기 흉하게 눈물을 뚝뚝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성별 분화를 겪은 이후로는 좀처럼, 아니, 애초에 레하트 앞에서는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옆에서 레하트가 다정스레 타이르듯이 물었다.

 

   "……타낫세, 걱정 많이 했구나?"

   "그, 그래. 너도 울지 않는데 내가 괜히. 미안하다. 그렇지만…… 둘 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정말로."

 

   타낫세는 간신히 눈물을 그친 채 훌쩍댔다. 뒤늦게 볼썽 사나운 짓을 했다 싶어서 귓가와 목덜미가 홧홧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아무리 연결을 함께 겪었다 해도 긴 시간 아이를 품고 직접 출산까지 한 것은 레하트인데. 레하트가 산고를 겪는 동안 고작 자신은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지 않았던가? 자신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자, 이번에는 고생한 레하트를 향해서도 고마운 마음이 솟아나 눈물이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만큼 눈물이 빗물처럼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레하트가 어쩔 수 없다는 모양새로 가볍게 웃고는 말했다.

 

   "타낫세가 우는 건 처음 봐. 울지 마, 타낫세. 좋은 날이잖아? 그리고 나도 우리 아기, 보고 싶은 걸……."

 

   그제야 타낫세는 허겁지겁 아이를 그녀의 곁에 뉘어주었다. 몸을 추스른 레하트가 그 작은 존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얀 손가락이 발갛게 얼룩덜룩한 아기의 얼굴 근처를 맴돌았다. 손끝이 차마 닿지 못하고 곁을 떠돌기만 했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타낫세를 닮았어."

   "그런가……."

   "정말이야. 눈매도 그렇고, 코도 그렇고, 작은 타낫세 같아……."

 

   레하트는 감격한 듯이 말했다. 푸른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아이의 모습 구석구석을 살피었다. 사랑이 묻어나는 따뜻한 시선이었다. 타낫세로서는 어디가 자신을 닮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레하트가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 싶었다. 사실 이전부터 자신보다는 레하트를 조금 더 많이 닮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이제와 그런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레하트가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레하트가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그거면 되는 것이다.

   타낫세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레하트의 볼을 쓰다듬었다. 레하트는 아이를 바라보면서도, 그의 손길에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타낫세는 말했다.

 

   "고맙다, 레하트…… 무사히 잘 견뎌주어서."

 

   다시금 목이 메어, 아무렇지 않은 척 몇 번 목을 가다듬어야 했다. 눈가에 힘을 주며 또렷이 말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응. 그리고 이제는 우리 셋이 함께야."

 

   레하트가 다정하게 답했다. 그래, 정말로 그러했다. 앞으로는 둘이 아니라 셋이서 함께 지낼 시간만이 남아있었다. 멀리서 동이 트는지 투명한 햇살이 창문을 넘어 그들을 비추었다. 새로운 삶을 축복하듯 따스하고 정결한 빛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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